Papa's Life/Gujoron

구조의 발견

높은산동그라미 2014. 4. 22. 03:56


철학하기의 출발-구조의 발견

2004/05/058
철학하기의 출발 -- 구조의 발견

여기에 어떤 것이 있습니다.
그 어떤 것의 존재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것을 손으로 집으려 할 때
비로소 문제가 되는 사실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구조입니다.

철학은 구조로부터 출발합니다.

여러분은 구조를 발견했습니까?
아니면 아직 구조를 발견하지 못했습니까?
이미 구조를 발견했다면 여러분은 철학을 시작할수 있고
미처 구조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철학할수 없습니다.

먼저 구조를 발견하십시오.
구조는 말로 설명되기보다 몸으로 체험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학습의 영역이 아니라 깨달음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한 장의 종이가 있습니다.
그것을 손으로 집기는 매우 쉽습니다.
그것이 특별히 무거운 것이 아니고 뾰족한 가시도 아닙니다.
그냥 집으면 됩니다.

그런데 막상 집으려 하니까 얇아서 안집어집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손가락에 침을 발라야 합니다.

이렇게 겉보기에 아무 탈이 없었는데
막상 손대려 하니까 새롭게 대두된 문제를 /구조/라고 합니다.

옷이 하나 있습니다.
색깔도 예쁘고 박음질도 튼튼하고 디자인도 앙증스럽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옷을 입으려고 하니까
잘 안들어갑니다.

그러한 점은 실제 입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실제 체험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이 부분이 학습의 영역이 아닌 깨달음의 영역입니다.

바로 철학의 출발점입니다.
세상에는 구조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철학은 구조의 발견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것은 그냥 두고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가
막상 실제로 움직여서 행하려 하니까 새로이 대두된 문제들입니다.

구조가 가장 쉽게 발견되는 것이 건축입니다.
집을 지으려면 주춧돌과 기둥과 벽돌이 있어야 합니다.
그걸 적당히 줏어쌓으면 집이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건축자재들 ..주춧돌과 기둥과 벽돌과 기왓장들을
쌓기만 하면 집이 되는가?
천만의 말씀 ... 집이 안됩니다.

뭐가 하나 빠져 있습니다.
그 빠진 것은 실제 집을 지어보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자 뭐가 잘못되었을까요?
왜 겉보기에 아무 탈이 없는데
막상 손대려 하니까 뭐가 잘 안되는 걸까요?

여러분은 일상에서 이런 구조체험을 무수히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생활에서 하루에도 수백가지의 구조를 발견할수 있습니다.
여기에 무언가 있다.
그것이 맘에 안든다.
바꿔보자.

근데 막상 바꾸려 하니까 안되는 거예요.
결코 예측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가 마구 대두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사소한 일일 것 같지만
더 크게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혁명을 하자.
혁명해야 해.
하면 된다.
근데 막상 하려하면 의외의 문제들이 마구 대두되어 혁명 안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구조주의자여야 합니다.
먼저 구조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혁명하기 전에 왜 혁명이 안되는지 이해할수 있습니다.
세상 그 모든 것에
실제로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존재합니다.
그리하여 도서관 구석에 쌓인 먼지 묻은 먹물지식이 아니라
산 경험이 필요합니다.

가게를 열어 장사를 한시간만 해보면
이거 뭐 안될 수 밖에 없는 뭔가가 있다는게 느껴집니다.
설사 그걸 말로 설명하지 못한다손 치더라도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것 쯤은
체험으로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성과 이성의 차이입니다.
지성이 알고 있는 것을 아는 것이라면
이성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철학은 지성이 아니라 이성의 영역입니다.
구조..눈에 뜨이지 않는 것..실제로 손대봐야 알수 있는 것
그러한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어떤 판단이든
오류일 가능성을 전제해 버리는 것.

절대적인 확신은
절대적인 오류일수 있음을 인정해 버리는 것
그것이 이성입니다.

지성적이되 이성적이지 못한 경우를 얼마든지 발견할수 있습니다.
어떤 문제든 막상 해보려하면
예기치 못했던 문제들이 새롭게 대두됩니다.
그러므로 /아무개/ 일을 하는데 100의 비용이 들 것 같다면
200의 비용을 준비해야 합니다.

요모조모 따져보고 100만 준비했다가 실패하는 것이 지성이라면
차라리 목표를 50으로 낮출수도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 이성입니다.

자 그렇다면 그 구조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기 한 장의 종이가 있습니다.
그 종이를 손으로 집는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막상 집으려 하니까 안집어질까요?
그건 손가락 탓이지 종이 탓 아닙니다.

우리는 종이만 보므로
손가락의 문제를 깨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좋은 옷이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입으려 하니까 입을수 없습니다.
그것은 옷의 문제가 아니라 옷을 입는 사람의 문제입니다.

구조란 그 종이와 손가락의 사이,
옷과 몸의 사이입니다.
그 사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배워서 아지 못하고 체험하여 아는 것입니다.

혁명이 실패하는 것은
마르크스의 방대한 언어 그 어디에도 이 사이라는 개념
구조라는 개념이 배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에서는 이 사이를 시장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시장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삼돌이 엄마와 개똥이 엄마가 담너머로 만나서 호박과
배추를 교환하려 하는 그 마음과 마음 사이에 시장이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성남에 모란장이나 괴산에 7일장만이 장이 아닙니다.
장터와 장은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장은 수요와 공급의 조건일치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물리적 존재형태가 아니라 상황조건의 형태입니다.

나사못 열 개를 박으려면 드라이버로 하나 돌리는데 10초 씩 걸립니다.
그렇다면 10개에 100초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나사못의 위치를 확인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빠져 있습니다.

나사못을 돌리는데 걸리는 시간은 절대시간입니다.
단축되지 않는 시간입니다.
숙련공이든 비숙련공이든 같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나사못의 위치를 확인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숙련공은 거의 시간이 안걸리고
비숙련공은 터무니 없이 시간이 걸립니다.

이게 자본주의냐 공산주의냐 하는 본질의 문제입니다.
농사는 농민이 짓는데 돈은 중상들이 법니다.
나사못을 돌리는데(농업) 걸리는 시간보다
나사못 위치를 찾는데(중개) 걸리는 시간이 길기 때문입니다.

중상들을 없애버리면 그 이익이 다 농민에게로 가느냐?
천만의 말씀입니다.
나사못 위치를 찾는데 걸리는 시간은 충분히 단축될수 있습니다.
국가나 협동조합이 중상들을 대신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발전은 끝없이 새로운 종류의 나사못들을 만들어냅니다.

필요한 것은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이란 이 세상 자체가 하나의 구조더라는 것입니다.
구조는 정보의 형태로 존재합니다.
이 세상 자체가
물질 알갱이가 아니라 하나의 정보로 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루는 기본적 형태.. 근원으로서의 질료는
물질이 아니라 정보이더라는 것입니다.
물질을 자꾸 깨부수면 구조만 남고 다 사라져 버립니다.
원자를 깨면 소립자가 나오고 소립자를 깨면 더 작은 입자가 나오고 하다가
최종적으로는 구조 곧 비례관계만 남습니다.

이 세상은 알갱이로 된 것이 아니라 복잡한 정도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텅텅 빈 허공에 한없이 큰 것과 한없이 작은 것을 설정합니다.
어느 것이 더 클까요?
크다 작다의 본질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크기는 없고 복잡한 정도만 있습니다.

이 우주는 최초의 한 점에서 폭발하여 세상에 가득차 충만해진 것이 아니라
거꾸로 ..아무 것도 없는 ..허공도 없는.. 없음도 없는
없음들의 한가운데

최초 하나가 설정되고 그 하나는 크기도 형태도 없습니다.
안도 밖도 없습니다.
크기가 없는거지요.

폭발의 개념은 이미 크기의 존재를 전제합니다.
작은 것이 커졌다는 식이지요.
크고 작음이 없으므로 커질수 없습니다.
있는 것은 복잡한 정도 뿐입니다.

크다는 것은 더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공간상수 1을 설정하고 거기에서 더 조밀해진 정도를
그 최초의 형태와 비교해서 비례로 나타내고
존재가 크기(질, 입자, 힘, 운동, 량)를 가지는 것은
그 비례된 크기일 뿐입 것입니다.

운동과 량과 힘의 크기들은 비교된 크기입니다.
비교되기 위해서 비교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구조입니다.

집이든 돌이든 막대기든 생물이든 어떤 것이 존재하려면
크기를 가져야 합니다.
질의 크기, 입자의 크기, 힘의 크기, 운동의 크기, 량의 크기,
그 크기들이 없으면 그것은 없는 것입니다.

크기를 가진다는 것은 곧 구조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한채의 집을 짓는다는 것은
그냥 짓는 것이 아니라 중력의 크기에 대응한다는 것입니다.
중력과 맞서는 방향으로 버티어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력을 발견하지 못하면 집을 지을수가 없습니다.
그 집은 구조의 취약성으로 무너집니다.
그러나 깨달음이 없을 때
목수들은 중력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주초위에 기둥을 올리고 들보를 올리기만 하면 집이 되는 줄 압니다.
중력과 맞서는 형태가 되어야 하고 중력에 맞서 이겨야 비로소 집이 됩니다.

그러나 실제 집을 지어보지 않은 그 어떤 목수도
눈에 보이지 않는 중력의 크기를 가늠하지는 못합니다.
그 모든 건축재료를 다 갖추어놓아도
중력을 계산해내지 못하면 그 건축재료들을 중력을 버텨내는
한도 안에서 가장 효율적인 배열순서로 배열해 내지 못합니다.

존재는 곧 구조입니다.
구조는 곧 비례입니다.
구조란 기하학적 표현이고 비례란 대수학적 표현일 뿐 같은 것입니다.
본질은 그 어떤 존재가
그 어떤 존재 내의 고유한 속성에 의하여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응되는 다른 어떠한 것과의 상관관계에 의하여 규정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여기 하나의 돌멩이가 있는데
그걸로 못을 처박으면 그 돌멩이는 곧 망치가 되고
그 돌을 먹으면 밥이 되고
그 돌로 때리면 흉기가 되고
그 돌을 두면 돌이 되고
이렇게 상대적으로 규정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돌과 그 돌을 규정하는 것 사이에는
상대적인 위상관계가 성립하지마는
그 두 개별자 사이의 위상관계 자체는 임의로 변경될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더라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지식은 그 어떤 대상의 존재방식에 대한 사정이고
지혜는 그 지식을 획득하고자 하는 인간의 인식방식입니다.
사랑은 그 대상과 인간 사이에 위상관계입니다.

인간과 대상이 어떠한 방식으로 만나느냐입니다.
그것이 곧 구조입니다.
즉 대상을 보아서도 인식이 아니고 인간을 보아서도 인식이 아니고
수요와 공급, 작용과 수용, 인간과 물질,
항상 이 둘 사이에 상관관계 즉 구조를 보아야만 인식이더라는
깨달음입니다.

긍극의 차원에서 존재의 근본은 물질이 아니라 구조입니다.
구조는 기하학적 개념이고 대수학적으로는 비례입니다.
비례는 하나의 식입니다.

어떤 하나가 아니라
하나가 이쪽으로 가면 다른 하나는 저쪽으로 가더라의
경험에서 하나와 둘 사이에 저울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구조는 법칙, 혹은 시스템, 혹은 패러다임, 혹은 체계, 혹은 짜임새
혹은 원리, 혹은 이론, 혹은 논리의 형태로 인간과 접촉합니다.
그러므로 구조를 아는 사람들은 무슨 대상을 관찰하거나
사업에 착수할 때 먼저 구조 곧 원칙, 법칙, 원리 패러다임,
공정, 설계도부터 찾습니다.

망치와 못, 톱과 판자만 갖추어지면
책꽂이 정도야 만들 수 있겠지 하면 착각입니다.
결정적으로 책의 크기, 책상의 크기 이런 것을 몰라버리면
만들어도 책상하고 안맞아서 올려놓을수가 없습니다.

이 시대 인간들의 관심사가 되어 있는 것은
빅뱅이론, 블랙홀이론, 불확정성의 원리, 상대성이론 이런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론들에 다 결핍되어 있는 것.
그것은 구조입니다.
구조를 알면 상대성이니 절대성이니 이런 말들이 필요없습니다.

비중, 혹은 비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구조를 대수적으로 풀어서 수치화 해둔 것입니다.
이 비율을 알면 손으로 재든 줄자로 재든
센티미터의 눈금으로 재든, 인치의 눈금으로 재든 상관없습니다.

상대성이란 이 비율을 모르니까
이거 줄자로 잴까 막대자로 잴까 고민하는 것입니다.
비율이 존재한다는 것은 환원될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학은 곧 해체와 환원입니다.
비율을 잊어먹으면 해체해놓고 환원하지 못합니다.
분해해놓고 조립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모든 과학가의 업적은 최종적으로 비율을 산출하고 그로서 끝납니다.
원자를 연구하든 소립자를 연구하든 고분자를 연구하든 저기를 연구하든
최종적으로는 비율을 나타내는 숫자를 몇 개 제시하고 연구 끝을 선언합니다.

그 비율이 원자량을 의미하기도 하고
수질의 오염도를 나타내기도 하고
환자의 혈압을 나타내기도 하고
막판에는 숫자입니다.

물리학이 최종적으로 도달하여야 할 곳은
공간상수 1 시간 상수 1의 크기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공간상수 1을 질의 크기, 입자의 크기, 힘의 크기, 운동의 크기, 량의 크기로
전환했을 때 각각 얼마의 수치를 기록할 것인가로 연구 끝
더 이상의 물리학은 없습니다.

그 수치계산의 공식을 찾아내는 것이
물리학입니다.
모든 학문분야가 그렇습니다.

먼저 찾아할 할 것은 구조고
구조는 공식으로 변화되고
공식에 대상을 대응시키면 비례수치로 전환된다.

그 구조의 존재를 찾아내는 데는 이성이 필요하므로 철학입니다.
그 찾아낸 구조를 공식화하여 비례수치로 전환하는데는
지성이 필요하므로 과학입니다.

사랑에도, 인생에도, 고독에도, 눈물에도, 믿음에도, 꿈에도
그러한 구조들이 존재합니다.
구조는 둘 이상이 만나서 상대성을 이루고
결합하여 절대성을 확보하여 공식으로 전환하고
대상을 만나서 해체되면서 비례수치의 기록을 남깁니다.
그 구조의 집이 질이 되고 그 집속에 든 식구 둘이 입자가 되고
상대성이 힘이 되고 해체가 운동이 되고 수치가 양이 됩니다.

마 그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마 그런 것이 있는 거 같이 느껴진다 하면 여러분은 일상에서
구조를 체험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철학할 자격이 있습니다.
구조란 무서운 것입니다.
아무리 복잡하고 정교한 기계장치가 있더라도
구조의 차원에서 보면 매우 단순명쾌 합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제발.
그 어떤 기계장치라도 모든 기계장치는
힘에서 운동으로 해체하면서 일(양)을 생산해내는 연속된 과정의
배열순서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힘이 먼저 주어지고 그 힘을 여하히 전달하여
운동으로 해체하여 일을 시킬까 하는 문제에서
연결순서와 방향지시 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로렉스 시계가 값이 200만원이고 터무니 없이 복잡하더라도
그 내부의 최소구성요소의 수는 25뿐입니다.
반드시 지시되어야 할 순서와 방향의 최소숫자는 25에 지나지 않으므로
25만으로 충분히 간단한 시계 하나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중복되고 보조적인 역할입니다.

- 김동열  (http://www.drkimz.com/) -



Tokyo Story N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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